일상

또 다시 찾아온 가을

Saunterer 2024. 9. 9. 00:02

지난 가을에는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찾아온 겨울은 매우 춥고 힘이 들었습니다.

 

한동안은 제게 새로운 계절이 허락될 것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지독한 허무감과 절망감, 상실감, 분노, 무력감, 억울함 등에 휩싸여 살던 나날이 많았습니다.

 

 

 

 

그런 날들을 통과해 오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다채롭고 아름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의 흑백의 삶과는, 잔인하게도 아무 상관없이 찬란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연과 세상은 너무 정교하고 기이하고 아름다웠으며, 사람들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요즘은 일이 안 되거나 마음이 어려울 때는 저 멀리 하늘과 산을 바라봅니다.

술은 여전히 마시기 어렵지만, 이젠 술자리에서 세네 시간은 충분히 쉽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치고, 같이 건배합니다.

 

 

 

 

현재의 초라하고 무력한 제 모습과 비교를 하면 모든 것이 잔인하지만,

사실 사방에 전부 절망만 있다면, 힘들 때에 바라볼 구석이 없었을 것입니다.

 

책도 음악도 명상도 생각도 아무 소용이 없어서 미친 듯이 걷기를 지속하다가

힘이 빠져서 바라본 곳에,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광경이 있었습니다.

힘이 빠져서 그저 이야기를 듣는 중에, 찬란하게 빛나고자 노력하는 동료들과 친구들이 잘 보였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힘듦과 망연자실함에

그저 멍하니 바라보게 된 자연과, 외부의 모습과, 인간에 대한 탐구는,

오히려 "답답한 경우에라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되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사실 제 성격이나 기질이 그렇게 많이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억눌렸던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한 예민함과 분노 표현은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에휴 내가 왜 이러나 하고, 여러 몇몇 가지 좋았던 말들과 생각들을 떠올립니다.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자리를 옮겨서, 찍어놓은 사진을 보거나 적어놓은 것들을 봅니다.

그리고 빠르게 다시 돌아오는 경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새롭고도 즐거운 변화입니다.

 

 

 

 

 

옛날에 저는 제가 원래부터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때는 매일매일 가능성과 새로움을 기대하면서 살았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던 한 청춘의 치기어린 삶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떤 것들을 조금씩 해내고 성취해 갈 때마다 많은 것을 얻어나가는 기쁨이

계속하여 유지되어 나가는 동안만 실질적으로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갖췄다'라고 생각될 즈음에도 이런 것들은 그럭저럭 동작했으나

사실은 동력은 떨어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저 관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서, 겉으로는 문제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리고 지속되어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멈추어 가는 중이었다는 것을 한동안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멈추어버린' 어른이자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았겠지만,

오히려 '지금 멈추어버린 것을 확인하는게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상황'이 되어서,

그것으로 인해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게 된 것에 조금씩 감사해나가고 있습니다.

 

https://youtu.be/zjQuNybSj34?si=CH-xG93GuJZ6SEp1

 

 

 

 

이번 가을은 한두번의 이사가 있을 예정이며,

이번엔 매일매일 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던, 정든 첫 집을 떠나게 됩니다.

 

명절 직후에 떠나야 해서 이번 주말 이틀 동안, 6년에 걸쳐 쌓여 있었던 짐을 어느 정도 정리했습니다.

애써 붙들고 있었던 많은 물건들도 덜어내고 비워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붙잡고 있는 것은 몇 년이었으나, 비워내는 것은 이틀밖에 안 되는 것이 허망하기도 했습니다.

 

여튼 까마득했었던 가을이 무심하고도 신속하게 찾아오고,

저는 지금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내년 가을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찾아오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