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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생각 2025. 7. 19. 12:26어릴 때 나는 특히 아버지에게 
 엄살이 심하다는 핀잔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애가 아프면 아파하는게 당연한 건데.
 
 시간이 지나며 내가 어른이 되고
 한 성인으로 바라보았을 때,
 우리 아버지처럼 엄살 많은 사람 또 없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음)
 
 결국엔 본인의 가장 싫고 취약한 부분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있었고,
 그것을 받고 성장했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아픈걸 참 잘 견디는 사람으로 큰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것을
 그냥 통상적인 아픔의 범위로 생각하고 넘기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것이 육체의 아픔이든,
 아니면 마음의 아픔이든.
 (똑같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러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아픔을 견디거나 또 안아프다고 최면을 거는 일들이
 실제로는 남자답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생길 문제를 방조한 일들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생각하고 또 발견하고 있다.
 
 즉, 어떤 고통과 아픔이 지금은 작아서 견딜만 하더라도
 그것이 점점 더 커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리고 그 원인이 어떤 질병의 진행인 경우라면,
 
 오히려 엄살이 많아서
 먼저 의사에게 달려간 사람이라면 생존할 일을
 병 다 키워서 나중에 불치병임을 깨닫고 죽는 등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어떤 아픔이나 답답함에는
 그걸 참고 의연하게 살아나가는 것이 '멋있는' 것이고
 '남자다운' 것이고 '맷집 좋고 대단한' 것이라고 하는
 부모님 세대 가치관을 인생 전체에 적용하는 것을 버리고,
 
 이 따끔거림과 쿡쿡 찌르는 통증 하나하나조차도
 이게 과연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고
 앞으로 무엇이 될까를 잘 생각하면서,
 
 불가피하며 필요한 것은 잘 견디고
 그렇지 않은 것은 미리미리 잘 대처할 수 있는
 좀더 민감하고 성숙한 삶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 이런 자세는
 강해야 할 때만 강하고, 약해야 할 때는 약함으로써
 좀더 확실히 에너지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에,
 전투력도 올라가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결혼 생활 끝나고 나서 편하게 사니까,
 내 사회 생활 대처 능력과 발언력은 더 높아졌고,
 요즘 들어서 이러한 변화는 조금은 즐겁다.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
 
 
 
  
 
 
 
 돌아보면, 나는 너무 강했다.
 그리고 그런 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유능함도 있었다.
 
 한 회사에서 그럭저럭 적응하고 성장하고 있었고,
 
 잠을 덜 자고 일과 연애를 동시에 잡으면서도
 제약된 예산에서 미래를 계획하고,
 나름 재테크를 하는 역량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나머지
 내가 누군가를 내 힘만으로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바뀔 수 있고 거기에 내가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을 보면서 계속 최면을 걸었다.
 약하니까 힘들지, 그렇지만 강하면 괜찮지.
 강한 사람이, 힘든건 감당하면 되지.
 
 좋게 말하면 유능했고,
 나쁘게 말하면 건방졌다.
 
 
 
 
 그렇게 수년을 지난 어느 주말 오전,
 이렇게 컴퓨터를 켜고
 
 온갖 부침(浮沈)이 많았던 커리어와
 개박살 나버린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며
 
 나는 이제는 무작정 견디는 것이 아닌,
 좀 더 다르게 살아 봐야 한다, 하고
 또 한번 생각해 본다.
 
 
 
 
 커리어 측면에서는, 나름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가면서
 메인스트림의 첨단에는 계속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전 회사는 내가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도망쳤는데,
 그것이 점점 더 잘한 선택임을 확인하고 있다.
 강하지 못해서 거기서 좀 더 견디다가 부러지지 않고
 좀 눌린 찌부가 되었지만
 그 결과로 빠르게 다른 좋은 분들을 만나러 올 수 있었다.
 
 
 
 
 반면 내 결혼 생활을 생각해 보면..
 
 
 
 
 나는 결혼 준비를 하는 중에
 온갖 준비를 남자에게 떠넘겨버리고
 심지어 겨우 하나의 일,
 식장에서 연주할 음악 정하는 일도 끝끝내 안하는
 매우 수동적이지만, 권위적이고 통제적인 사람을
 참을 수 있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강했다.
 그리고 잘 견뎠다.
 
 
 
 나는 결혼식 이후 내 특유재산인 아파트에는
 공동명의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그에 반해 혼인신고는 죽어라 싫어하고
 그것을 가지고 계속 수년간 마지막까지 물고늘어지는
 (설마 이혼 경험이 그 전에도 있었나? ㅎ)
 자기 권리만 소중하고 따지던 사람을
 참을 수 있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강했다.
 그리고 잘 견뎠다.
 
 
 
 나는 자기 부모가족은 오빠를 좋아하고 위한다면서
 이것저것에 참석 및 관여하도록 하고
 또 여행을 같이 가자고 하는 등
 여러 부분에 거리낌이 없었으면서,
 우리 부모 친척들 한번 명절때 만나는게 무섭다고
 결혼한 후 첫 설 연휴 직전에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결국 모든 일정을 내가 엎게 해 놓고,
 도망간 어떤 호텔방에서 같이 쉬었던 것이
 매우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종종 얘기하는
 (난 아직도 그 때 그 당혹감이 새삼 떠오를 때가 있다)
 
 상대방의 삶의 베이스(좋든싫든 고향이고 가족인)를
 손쉽게 부정하는 사람을
 참을 수 있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강했다.
 그리고 잘 견뎠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도
 어느 하나의 인생의 방식일 터인데,
 (아직도 이 문제는 사람들 각자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함)
 양가 부모가 각자 우리에게 얘기를 했지만
 그쪽 부모가 "너네 오빠 무슨 기능적 문제 있는거 아니니" 등의 말은 내게 잘 전하면서
 이쪽 부모가 "언제 아이 가질거니" 한번 한걸로
 몇년을 패드립에 상대 부모 욕을 하는 사람을
 참을 수 있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강했다.
 그리고 잘 견뎠다.
 
 
 
 
 자기 얘기는 미주알고주알 다 하면서
 제대로 안 들으면 서운하다고 하면서
 그 나름대로 여러 인간관계와 일의 어려움을 겪는
 내 얘기는 듣다가 지겹다고 안 듣거나
 또는 듣다가 그건 니가 잘못이지 등의
 일축을 남발해 버리면서
 그리고 밥먹으면서 휴대폰을 몸에서 떼놓지도 않으면서
 쓰레기같은 글들을 확인하면서,
 상대방은 언제나 자기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런 사람을 참을 능력이 있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강했다.
 그리고 잘 견뎠다.
 
 
 
 
 자기 수틀리면 이새끼 저새끼 이년 저년 시발
 욕을 제멋대로 하면서,
 제발 욕좀 그만해 달라는 애원과 사정을
 수년간 귓등에도 듣지 않았던 사람,
 그 조롱과 욕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직도 가슴에 많이 박혀 있어서 힘들지만
 그것을 참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강했다.
 그리고 잘 견뎠다.
 
 
 
 
 이 모든 것들을 다 견디고 강해지고 무뎌지고
 아, 이쯤이면
 나는 아버지도 인정할 만한 강한 사람인가,
 하면서 그렇게 살아 나갔더니,
 
 어느 순간 상대방의 인생의 모든 불행과 괴로움,
 그것들의 원인은 내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상대방은,
 나를 대체할 다른 사람을 찾아왔더라.
 내가 마련한 집까지 그가 들락거리게 만들더라.
 
 나는 그 때조차도 너무 강했고,
 그리고 잘 견뎠다.
 
 
 
 
 나는 너무 강했다.
 너무 잘 참았다.
 그래서 나를 그냥 견디는 기계로 만들었고,
 상대방이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미리 막아내지 못했다.
 
 진작에 접었어야 했다.
 또는 접을려고 시도라도 해 봐야 했다.
 
 아니 차라리, 나는 약하고 무너지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차라리 시간이 많이 가기 전에 새출발을 하는 것이 나았다.
 
 그걸 또 한번 더 살펴보자 두고보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극복할 수 있겠지 하면서
 또 나를 강하게 만들어서 참고 견뎠더니,
 
 관계의 마지막까지도 결혼 준비때와 같이
 이혼을 해야 한다고 통보하고 떠나버리고
 (결혼도 당장이 아니면 나쁜 사람이라고 했지)
 집 팔고 짐 나누는 일까지 모두 나에게 떠넘기고
 끝까지 내 손에 다 던져놓고
 마지막 날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나는, 아, 사람이 몇년을 같이 살면
 바뀌는 것이 좀 있어야 하는데,
 나와의 시간은 이 사람을 하나도 좋게 바꿔놓지 못했구나. 하면서
 
 더더욱 절망스러웠고,
 자존심 상했고,
 치욕스러웠다.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
 이제는 아프다 힘들다 답답하다
 징징거리며 살거다.
 (그래봤자 뭐 얼마나 더 그러겠느냐만은)
 그게 싫은 사람이라면 함께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