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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박사 과정 생활이 예상치 못하게 너무나 길어지던 그 때,
한국 사회의 여러 압박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무기력과 우울감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기 중 두 살 아래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식장에서 나와서 근처 카페에 간 자리에서
동기/선배/후배들 스무명 이상의 사람들 앞에서,
제 인생의 늦음과 실패에 대한 훈계를 들었습니다.
왜 아직 그렇게 살고 있냐는 말,
걱정을 빙자한 자기들의 우월감 확인의 말,
등을 들었던 기억이 너무 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그 때 제 나이 서른 초반이었습니다.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현재 저는 그럭저럭 성공한 것 같은 삶으로 빠르게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엊그제 삼쩜삼 로그인을 해 보니 작년 기준 30대 소득 순위 상위 2%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저 아픈 기억의 반작용으로, 너무나 바쁘고 괴롭게 자신을 채찍질하고 오다 보니,
갑자기 올해 들어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이 생겼습니다.
출산률 최저, 자살율 최고의 헬조선을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 청년인 저에게는,
그 때 누가 저에게 이런 말을 정말 해 주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지금 해 주고 싶습니다.
꽃들은 저마다 꽃 피울 시기와, 꽃 피는 기간이 각기 다르다
걸어서 출퇴근하는 거리가 30분 정도 되는데, 감사하게도 출퇴근길에 나무와 꽃들이 많이 있습니다.
겨울부터 걷던 거리에는 봄이 성큼 왔고,
이제 여름과 같은 날씨로 변해 가는 동안, 꽃들을 매일매일 관찰해 보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투성이인 동네에서, 이렇게 월세로라도 좋은 동네로 와서, 새로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꽃들이 그냥 다 비슷하게 피고 지는 것 같지만, 각자 피는 시기와 유지되는 시기가 다른 것입니다.
어제 오전에는 길 모퉁이에서 위 사진의 꽃을 찍었는데,
이 꽃은 이제야, 5월이 다가와서야, 이렇게 예쁘게 피었습니다.
제가 이 꽃을 그 전까지는 그저 꽃피우지 않는 잡초로 생각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입니다.
아마 제 인생 두 번째의 꽃도, 다른 사람들과의 인생과는 또 다르게, 어느 적절한 때 피게 될까.
그래서 계속 힘을 내서 살아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이 꽃을 보고 했습니다.
그런 후 다시 오늘 이 꽃 사진을 보면서, 위와 같은 말을 제 자신에게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