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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아니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로 생각하면서,
자기만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던 것들이,
후천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계속 깨어지고 박살나면서,
결국에는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내 중심으로만 생각해서는 계속해서 헛발질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배워나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 들고 어느 정도 힘이 빠지면,
저항하지 않고 흘러가는 법을 알게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나의 세계는,
내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어른인 부모의 시각을 상속 받고,
여기에 유년기의 여러 특징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형성되게 되므로,
어떤 사람의 인생 여정은
대부분 이렇게 먼저 칠해져 버리면서 형성되는 (거부할 수 없었던 어린 때에)
자기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얼마나 현실에 align 되는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쉽게도 느껴지고 또는 어렵게도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특정 극단적인 상황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억울할 일은 아닌 것이,
각 사회와 시대에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의 특징에 따라서,
내가 실제로 맞닥뜨리고 깨지고 박살날 것들이 다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조선 시대에 정말 적합한 사람의 특징이, 현대 사회에서 매우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시골에 적합한 사람의 특징이, 대도시에서 매우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남자로 살기에 적합한 사람의 특징이, 여자로 살기에는 매우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면,
제가 속한 곳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특성들이, 제 기질로 굳어져,
제게 많은 고통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는 이 세 가지 특성들을 놓고
인생을 살고 또 싸워 나가는 고유 퀘스트들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고생하고 있고 앞으로도 고생하게 될 이런 특성들에 대해,
혹 앞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고 제 문제를 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으니,
쭉 적어서 기록해 봅니다.
앞으로 이것들이 가짓수가 줄어들지,
아님 네개 다섯개 이런 식으로 더 늘어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1. 진정성
부모님은 두 분 연세 60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고마워하지 않는 할머니를 끝까지 모시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땀 흘려 일하고 벌어서 모으는,
또한 남의 돈을 빌리는 민폐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진정성 있게 사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가치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삶의 모습은 보통, 상대방에게 거절하거나 불만을 말하는 것을 꺼리며,
누군가의 힘과 도움을 빌려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극도로 피하며,
오직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묵묵히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 나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는, 결국 할머니에게 단 한번도 사랑과 인정을 받아 보지 못하고 보내 드린 아버지,
시어머니에게 거의 40년을 오로지 헌신만을 한 어머니,
그리고 화폐 가치의 급속 하락으로 증발해버린 예금이 남았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레버리지를 일으켜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에
다른 사람들보다 십년 이상이 늦었고,
인정 받고 싶은 욕구마저 거세하며,
진정성 있는 모습처럼 부당한 일들을 당하고 사는 일의 결과가
(중간에 우는 소리하거나 못하겠다고 하면 진정성이 떨어져 보이니까)
결국에는 나를 둘러싼 관계들에 때로는 뒤틀림과 파멸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 십수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두 분의 시간대에서는 부모를 모시는 것이 미덕이었고,
두 분은 주변 사람들과 친지 친척들에게 매우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오직 노동 소득만으로 이루어내신 노후 안정에 매우 만족해하십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것들이 독이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요.
조금이나마 성인이 되면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정도도 못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 고립성
부모님은 지극히도 안전 지향주의의 삶을 사셨습니다.
젊은 시절 경험한 것들 중 안전한 것들만 노년까지 계속 경험하고 살면 된다.
세상 모든게 다 똑같고, 오히려 위험한 것들도 많으니까 안전한 것만 계속 하면 된다.
두 분은 육년 전 동생과 제가 겨우겨우 잡은 가족 여행으로 "첫 제주도, 첫 비행기" 경험을 하셨고,
평생 고향 그 곳에서 60여년을 살고 계십니다.
심지어 노후 대비용으로 지은 집 또한 그 동네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고립성을 상속받아 버린 나머지,
지극히도 무미건조하고 아무 것도 없었던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공부만 함)
서울 올라와서도 신촌에서만 13년을 살았고,
한 연구실에서 9년을 고립되어 보냈고,
한 회사를 7년을 다녔습니다.
놀라운 것은 위에 저렇게 적은 것도, 부모님의 삶에 비하면 빈도가 높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애써 온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에도 길이 있다,
안 해 본 것들 중에 좋은 것들도 많다,
좋은 환경이 아니면 떠나도 되고, 동네가 구리면 이사해도 되고,
회사가 나쁘면 이직해도 되고, 사람이 나쁘면 절교해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수많은 것들, 수많은 동네, 수많은 회사, 수많은 사람이 있다.
이것을 깨져 나가면서 계속 배워나가는 것에, 이십여년이 걸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빨리 바뀌고 있고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방이 바뀌는 것은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고루하게 붙잡고 늘어지면서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손해입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으면 모르겠지만요.
모든 것을 지켜야 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 삶의 모습입니다.
3. 특수성
특수성은 곧, 자아를 확립하고 개성을 획득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독특한 성격을 지녔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도 나만은 달라. 난 아니야.
모든 증거가 다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예외야. 나는 특별해.
아버지는 정말 이런 생각이 강하신 분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어디 철학관에서 본인 성격을 "독불장군" 이라고 진단해 준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는 분이셨습니다.
몰개성과 보편화의 시대에서, 본인의 캐릭터가 정말 특수성이 있다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좀 달라.
이것은 위의 진정성, 고립성을 미덕으로 삼아야 했던 그 분이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애써서 외우고 지켜야 할 그 어떤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제 특수성이 보편성 위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세상을 살면 살수록, 인간은 아무것도 없음을 느낍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볼수록 공허함을 크게 느낍니다.
맞으면 아프고, 추우면 떨고, 더우면 땀이 흐르고, 배고프면 밥 먹고 싶은 동물입니다.
무언가 특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인터넷에 똑같은 얘기 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고,
무언가 나는 다른 것 같지만 사실 자기합리화와 자기최면이 점철된 인생을 살고,
부끄러운 것들이 한가득 있는 인생입니다.
나는 과학자가 되고 빌게이츠가 되고 일론 머스크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면 알수록, 나라는 인간은 타인에 비해서 그 어떤 것도 특별하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본인은 암에 안 걸리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담배를 피우시다가 암에 걸리셨습니다.
본인은 명예롭고 고고하다고 하다가도 암 앞에서는 인생을 돌아보며 눈물 흘리셨습니다.
저는 헤어지고 이혼하고 하는 사람들을 보며 기이하게,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제 레파토리가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또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보편성을 가지는 것을 생각하고,
그러니까 내 앞에 수많은 위험들과 어려움이 있고 나도 그 상황을 겪으면 어쩔 수 없고,
그래서 미리 대비해야 하고, 인생 선배들의 말을 들어야 하고, 타산지석을 삼아야 하고,
인간에 대해 알아야 하고, 책을 봐야 하고, 심리학과 철학을 알아야 하고,
나같은 보편적인 인간을 수없이 보고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소통을 해야 한다는
이 자명한 진실을 이제야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요약해 보면, 앞으로의 저를 위하여, 이렇게 적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진정성이 밥 먹여 주지 않으니, 진정성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관계 속에서 수시로 점검하고,
내 깜냥에 맞게 그때그때 적합한 행동을 하자. - 고립되지 말고, 바깥을 수시로 탐색하며, 내 속에 사지선다만 가지고 있지 말자.
사실 내가 겪는 문제들은 100지선다일수도 있고, 답이 여러개일 수도 있다. - 나의 개성이 있지만, 사실 인간으로서 보편성 아래 놓여 있는 부분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조언을 잘 듣고, 수많은 사례들을 보고, 교훈과 타산지석을 삼자.
고집 부리지 말자.
앞으로는 이 글을 바탕으로 하여, 여러 생각을 기록하고 발전시켜 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너무 약점만 적어 놓은 것 같아서, 좋았던 특성들에 대해서도 적어 볼 생각입니다.
이상입니다.
호갱노노 분양 제외 조회수 1위, KB부동산 최애 단지 1위 헬리오시티의 파크밴드 사진 -> 비싼건 이유가 있더라. 그리고 나도 비싼 걸 좋아하더라... (보편성)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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