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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공원에서 대낮에 찍은 벤치 어떤 사람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수없이 많은 형용사가 있지만, 나약하다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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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나약함의 연속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10개월에서 몇 개월 못 채워서 태어난 것도 모자라서,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어릴 때부터 자주 탈도 많았다고 합니다.
키가 자라가며 비쩍 마른 몸이 부각되자, 아버지는 자주 저의 유약한 몸과 얼굴 인상을 걱정하고 또 지적하고는 하셨습니다.
남자답고 씩씩해야 얕보이지 않고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는데, 너무 걱정이라고요.
지겹도록 아버지에게 저런 소리를 많이 듣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저 아버지만 저러는 것이다 생각했는데,
대학에 왔을 때 마치 자기들 접대하러 나온 여자를 희롱하듯이 제 몸을 더듬던 모 선배를 보면서,
내가 그렇게 허약하고 나약해 보이는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기회만 되면 리더의 역할을 맡아 보려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방식으로요.
어떻게든 강해져 보자고 열심히 더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유난히도 다사다난했던 삶 때문에, 몸과 마음이 부러지는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젊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뭐 그렇게 겉보기에 강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게 살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그렇게 강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조금이나마 저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싫지 않습니다.
애초에 강한 모습이 부족했고, 강함을 주장할 수 없었고, 강하고 매몰차게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응징할 수 없었기에,
오히려 좀 더 수그리고, 휘어지고, 잠깐 피하고, 도움을 청하고, 때로는 누워 있고, 그렇게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아래의 글에서 나오는 잡초와 갈대처럼요.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1808260016
[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30) | 잡초는 왜 강할까?] 유연하면서 강인한 남다른 생존력
갈대는 바람 불면 눕고 지나가면 일어서…바랭이는 마디에서도 뿌리 내려 바람이 분다. 여전히 뜨겁지만 선선한 바람이 많아지는 바람이다. 가을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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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 보면,
너무 강하고, 또는 자신이 강하다고 (약한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이를 악물고 다니시던 분들께서,
하나 둘 씩 무너지거나 갑자기 주저앉아 버리는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됩니다.
또는 누구도 의지하지 않는 것을 강함의 미덕으로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는 분들도 보입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그렇게 사는 방법밖에 몰랐던 분들이, 고독하게 고립되어 있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고 싶고, 위로를 해 주고 싶어도, 자신은 홀로 서야 한다고 주장하기 일쑤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족이고, 친구이고, 동료일 때, 근처에서 보면 미칠 지경입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면서 때로는 자기 키보다 더 큰 파도를 만날 때는,
그 파도에 쓸려나가지 않게 해 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인데,
추측하기로 그들은 어떻게 손을 잡아야 할지, 방법을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는 한 번도 굽혀져 본 적이 없는 몸이, 엎드리거나 수그려야 할 때, 움직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에는 그저 나약하게 살아가면서,
뛰거나 걷다가 힘들면 중간중간 벤치에 앉으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는 옆에 있는 나약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손을 붙잡아 끌면서,
살아 나가고 싶습니다.